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문단 편집) ===== 신자유주의 ===== 피노체트는 경제 자유화, 국유 기업의 민영화, 인플레이션 안정화라는 세 가지 주요 목표를 가진 경제 모델을 구현하며 세계 최초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쿠데타 성공 이후 70년대 경제 위기에서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하던 데다가 경제난을 해결할 전문 지식이 없던 피노체트 정권은 [[밀턴 프리드먼]]의 통화주의 이론을 따르는 미국 유학파 경제학자들을 기용했는데, 때문에 칠레에선 여러 의미로 이곳이 신자유주의의 고향이라는 말도 한다. 다만 이때 기용한 시카고 학파 재무부 장관도 고정환율제 등 삽질을 하다 정작 다른 시카고 학파 경제학자들이 주로 요구한 변동환율제는 라이벌 케임브리지대 출신이 하게 된다.] 실행한 지도자이기도 하다.[* 물론 이론적으로 보면 신자유주의는 경제적 자유주의만 일컫는 게 아니기 때문에 독재정권에 붙일만한 단어는 아니긴 하다.] 자유시장과 금융개방, 통화정책을 중시하는 시카고 대학 경제학과에서 사사한 유학파 출신들(소위 시카고 보이즈)을 경제 관료로 중용하면서 이전 [[살바도르 아옌데]] 인민전선 정부의 [[토지개혁]], 의료체계 개편과 같은 사회주의적 개혁 정책들이 상당수 취소되었고, 주요 국영기업의 민영화, 규제 철폐, 무역장벽 완화 등의 정책들이 그의 집권기에 실시되었다. 실제로 [[세계은행]]에 따르면 1990년까지 칠레는 무역 자유화 지수가 가능한 최대치인 20에 도달한 유일한 국가였다고 한다. 피노체트 정권 시절 칠레 경제는 시기에 따른 등락이 있다. 사실 전술한 것처럼 군정 시절에는 아옌데 시절보다 나아진 것이 없었는데, 그 일례로 쿠데타가 일어난 1973년에 352.8%였던 물가상승률이 피노체트 집권 1년차인 1974년에는 504.7%로 오히려 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밀턴 프리드먼]]은 칠레 정부에게 "먼저 '환자(칠레)'의 느린 회복을 중점적으로 해야 하지만, 환자가 너무 오래 기다리면 죽을 수 있다. 그 다음에는 '환자'에게 충격 치료를 주어 활력을 되찾게 하라"고 조언했다. 피노체트는 이에 따라 공공 지출을 27% 낮추고 공무원 30%를 해고하면서 500개의 국영기업을 민영화하는 '충격 요법'을 취했지만 실행 초기인 1975년에는 GDP 12% 감소, 실업률이 16%로 증가[* 1973년 당시 실업률은 4.3%였다.], 수출액 40% 하락이라는 대실패를 맞이하는 듯했다. 그러나 1977년부터 이 정책은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고, 20% 이상에 달하던 실업률을 제외한 모든 수치가 높게 나와 5년여간은 경제 호황을 누렸고, 프리드먼은 이를 보고 1982년 1월 25일에 [[뉴스위크]]에 '칠레의 기적'에 대해 찬미하는 칼럼을 썼다. 그러나 당시 칠레의 실제 경제 성장률은 칠레의 잠재적 경제 성장률보다 낮았지만 어쨌든 당시 경제 호황은 '붐'에 가까운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 무렵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인 [[폴 볼커]]가 [[인플레이션]] 억제를 목적으로 한 초고금리 정책을 펼치며 달러 가치가 폭등했고, 이는 아예 [[소련]] 붕괴에 영향을 줬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달러 부채를 진 남미 국가들은 소위 '볼커 쿠데타' 때문에 전부 다 부채 위기에 시달리며 엄청난 경제위기가 몰려왔는데, 그 중 경제개방을 하겠다고 외채를 마구잡이로 끌여들이는 방식으로 호황을 누려온 칠레는 다른 남미 국가보다도 부작용이 더 컸다. 23.7%의 실업률을 기록한 데다가 급여 수준은 1970년 대비 14%로 떨어졌고 GDP는 무려 -14.3%나 급락하여[* 참고로 당시 다른 남미 국가의 평균 GDP 성장률은 -3.2% 정도였다.] [[IMF]]의 구제 금융까지 받는 등 칠레 경제가 완전히 작살날 뻔 했고, 마이너스 성장은 1983년에도 이어졌고, 칠레의 외채는 라틴 아메리카 국가 중 5번째로 높게 나왔으며, 그 결과 세계적으로 피노체트의 경제 정책은 실패로 끝났다고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피노체트는 시카고 보이즈들을 경질하기 시작했고 1984년에는 일시적으로 신자유주의 사상과 거리가 먼 재무장관을 임명했지만, 고작 1년 뒤에 국가가 위기에서 회복되었다 판단하여 다시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돌아갔고, 이후에는 몇몇 은행들과 사업들을 국유화하고 나중에 민영화를 하는 등 이전에 비해 온건한 신자유주의 정책이 전개되었다. 그리고 피노체트 정부는 보조금과 크레딧을 대주어 사업들의 성장을 촉진시켰으며, 이렇게 다른 중남미 국가들과는 달리 구조조정에 성공을 거둔 것과 동시에 1985년부터 1990년까지는 칠레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남아메리카 최고 수치인 5.9%를 기록하면서 80년대 후반에는 과일과 공산품 수출이 증가하며 드디어 경제 위기에서 벗어났다. 동시에 빈곤층의 소득도 이전보다 30% 증가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피노체트 정권이 채택한 실용적인 경제 정책과 당시 등용된 경제 관료들의 활동은 민주화 이후 정부들에서도 계속되었고, 그 결과 칠레는 오늘날에는 남미에서 가장 잘사는 국가로 여겨질 정도로 성장하게 되었다.[* 실제 피노체트식 경제 정책들은 비슷한 시기 또 비슷하게 군사 정권들이 들어서 있던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등지로 수출되었는데, 나름 성과를 거두었던 칠레와는 달리, 다른 중남미 국가에선 처참하게 실패해 버렸다. 게다가 다른 나라들의 군사 정권들은 피노체트와 달리 이런 위기도 해결하지 못해 다른 지역의 군사정권은 오늘날에도 호불호 없이 악평만 받는다.] 물론 이러한 배경에는 피노체트 이전 미국 정권과 갈등을 빚던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 당시 미국의 철저한 경제적 고립정책과 제재가 뒤따랐고, 반대로 자신들이 사주한 피노체트에는 미국이 이곳저곳에 통 큰 지원을 쏟아냈다는 것도 감안해야 하지만, 여하튼 이 때문에 당시에는 물론 지금도 피노체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상당하며, 1988년 피노체트의 집권 연장 찬반을 묻는 투표를 피노체트 측이 수락한 것도 이 지지기반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투표 결과 '''상당한 표차로 피노체트 측이 졌다'''는 것이 함정이지만. 하여튼 민주화된 90년대 이후 정권은 20년 연속 중도좌파쪽으로 넘어갔지만 칠레의 경제성장은 이때도 꾸준히 이어져 1인당 [[GDP]]는 남미 최정상급이 되었다. 다만 민주정권 시절 빈부격차를 줄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음에도 여전히 심각한 양극화 문제는 칠레의 골칫거리로 남아있다. 한편 1990년에 집권한 중도좌파 정당 Concertación Democrática는 90년대 이래 [[칠레]] 정치사에서 대부분 과반 이상 내지는 제1당 자리 및 대통령 자리를 차지하면서 주류 세력을 차지했다. 물론 피노체트 쪽의 우파들도 4할 정도의 지지는 확보하여 완전히 기반을 잃은 것은 아니라, 상원이나 군부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콘세르타시온 민주 정권은 급격한 노선 수정 대신 시장친화적 경제 정책 기조를 이어나갔으며, 대신 복지에 대한 지출을 늘림으로서 빈부격차를 해소하려는 노력을 하거나 노동조합들의 이익 추구를 도와주는 법을 통과하는 등 실용적인 노선을 추구하였다. 다만 2000년대 리카르도 라고스 전 대통령은 시카고 보이즈들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부정적인 입장을 띄었고, 후임인 미첼 바첼레트 대통령 역시 이런 기조하에 경제성장을 이뤄내 결과적으로 1987년부터 2007년에 이르기까지 [[칠레]]의 평균 GDP 성장률은 당시 라틴 아메리카 평균 GDP 성장률인 2.8%를 상회하는 6%를 유지했다. 빈곤율도 1987년 45%에서 노동조합 법이 통과되고 피노체트가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해인 1990년에는 38.6%으로, 2007년에는 13.7%로 떨어지고 소득 격차도 소폭 감소하긴 했다.[* 때문에 사실 칠레 경제를 이만큼 키워놓은 건 피노체트보단 민주 정권의 공이 더 크다고 평가하는 학자들도 있다. 실제 수치로만 보면 틀린 주장은 아니고, 피노체트 기간 칠레의 기적 운운하던 학자들은 규제 철폐에 따른 금융 투기 때문에 일어난 80년대의 산업 붕괴를 고려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2007넌 당시 칠레의 실업률은 7%에 빈곤율은 18.2% 정도였는데, 둘 다 남미 지역에서는 비교적 낮은 수치였다고 한다.] 물론 빈부격차 문제는 칠레 역시 다른 남미 국가들처럼 여전히 골칫거리긴 하다. 칠레의 경제성장이 수출 주도 정책 등의 결과라고 보기도 하는데 이 말은 보기에 따라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다. 규제 완화를 정책이라 볼 수 있으면 어느 정도 맞을지도 모르나, 만약 국가의 개입을 시장 자유의 축소라는 관점에서 볼 경우 이 말은 명백히 문제가 있다. 그리고 [[칠레]]의 경제성장은 사실 [[구리]] 자원에 힘입은 것도 크지만, 칠레 내에서 나름 구조 개혁을 철저히 수립한 점도 감안할 필요는 있다. [[https://www.google.co.kr/search?q=%EA%B5%AC%EB%A6%AC+%EA%B0%80%EA%B2%A9&newwindow=1&biw=1536&bih=736&source=lnms&tbm=isch&sa=X&ved=0ahUKEwicl72mk9XQAhXGTbwKHQF2CkQQ_AUIBygC#newwindow=1&tbm=isch&q=30+years+cu+price&imgrc=jJq-M3pghG_NpM%3A|#]] 또 1989~2000년까지만 해도 구리 가격이 꼭 그리 상승세이지만도 않았다. 오히려 89년부터 90년대 초까지는 구리 가격이 하향세였다. 거기에 더해서 선진국 기업들의 생산기지가 칠레만 그런 것도 아니다. IT에서 잘나가는 인도 역시 자국의 해당 산업에서 외국계 기업의 비중이 족히 절반은 된다.[[https://www.google.co.kr/url?sa=t&rct=j&q=&esrc=s&source=web&cd=3&ved=0ahUKEwjp65yHmNXQAhVByLwKHRdCDz4QFggqMAI&url=https%3A%2F%2Fwww.sw.or.kr%2Fsystem%2Fdownload.jsp%3Ftype%3Dbbs%26subType%3Dhji%26filename%3D20151224143825001001.pdf%26name%3D%25EC%259D%25B8%25EB%258F%2584%2BSW%2B%25EB%25B3%25B4%25EA%25B3%25A0%25EC%2584%259C.pdf&usg=AFQjCNEau9V2VsKkR26vAYIeyMqcOpunFw&sig2=WGrZP6Za8sq_9UPBf1X7-Q&bvm=bv.139782543,d.dGc|#]] [[http://www.kfranchise.kr/?p=10687|#]] 말레이시아 역시 제법 괜찮게 성장하는 축에 속하는데 이들 역시 제조업 분야에서 외국계의 비중이 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